
2026년 7월 6일 밤, 집 서재에서
To. 박 사장
잘 지내냐. 우리 넷은 어젯밤 비행기로 무사히 들어왔다. 미안한 얘기부터 하자면, 이번 하노이는 네가 빠진 게 두고두고 아까울 만큼 좋았다. 우리 모임 20년에 태국도 가 보고 필리핀도 가 봤는데 3박4일에 54홀을 이렇게 몸 편하게 돈 건 처음이지 싶다.
단톡방에 사진 몇 장 던지고 말려다가, 네가 어땠는지 자세히 써서 보내라고 했으니 진짜 편지처럼 길게 쓴다. 스코어도 숨기지 않고 쓸 테니까 읽다가 웃지나 마라.
참, 이번엔 아는 형 소개로 티그룹이라는 데에 통째로 맡겨서 우리 넷만 가는 단독으로 짰다. 조인 없고 쇼핑 안 끌려다닌 게 이번 여행의 팔 할이었다고 본다.
첫날 돈 레전드힐. 산이 코스를 빙 둘러싸고 있어서 어느 홀에서 찍어도 그림이 된다.
첫날 얘기부터. 노이바이에 내리니까 기사님이 이름 쓴 종이 들고 서 있더라. 근데 박 사장, 공항에서 골프장까지 20분이다. 20분. 인천에서 우리 집 가는 것보다 가깝다. 그래서 첫날 오전에 도착해서 그날 바로 레전드힐 18홀을 돌았다.
레전드힐은 그린이 홀마다 두 개씩 있는 트윈그린이라는 게 있는데, 캐디가 오늘은 왼쪽 그린이라고 알려 주는데도 나는 두 번이나 엉뚱한 그린에 올려놓고 좋아했다. 같이 간 최가 옆에서 배꼽을 잡았고. 첫날이라 몸도 안 풀렸고 비행기 피로도 있고 해서 91타. 변명 맞다.
저녁엔 시내 5성 호텔에 짐 풀고 구시가지 나가서 분짜를 먹었는데, 숯불 향 나는 고기를 새콤한 국물에 적셔 먹는 거다. 하노이 맥주가 한 병에 우리 돈 천몇백 원 하는데, 넷이서 테이블에 병을 몇 개를 쌓았는지 세다가 말았다.
둘째 날 킹스아일랜드. 클럽하우스에서 내려다본 동모 호수, 여기서 배를 탄다.
둘째 날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킹스아일랜드라고, 동모 호수 한가운데 섬에 코스가 있어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간다. 골프 가방 실은 배가 아침 물안개 낀 호수를 가로지르는데, 야 이게 골프 치러 가는 길이 맞나 싶더라. 김이 뱃머리에서 사진 찍다가 모자 날려 먹을 뻔했다.
코스는 좋은데 물이 진짜 사방에 있다. 나 이날 공 네 개 헌납했다. 호수에 두 개,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게 두 개. 캐디 아가씨가 내 공 떨어지는 자리를 나보다 먼저 알던데, 그 정도로 다들 물에 빠뜨린다는 얘기겠지. 94타. 그래도 경치 값 했다고 친다.
하나 솔직히 말하면, 7월 북부는 덥다. 오후 두 시 넘어가니까 등이 젖더라. 우리는 티타임을 6시 40분으로 새벽같이 잡아 줘서 후반 가기 전에 제일 심한 더위는 피했는데, 새벽 다섯 시 기상은 그것대로 곤욕이었다. 그래도 정답은 이른 티타임이 맞다. 여름에 갈 거면 각오해라.
킹스 코스 마지막 몇 홀. 해 넘어가는 페어웨이가 이랬다.
셋째 날은 스카이레이크. 여기가 아시아 100대 코스에 들어간다는 데인데, 솔직히 그런 타이틀은 반쯤 흘려들었거든. 근데 페어웨이 밟는 순간 알겠더라. 잔디가 융단이다. 북부에서 잔디 관리는 여기가 제일이라는데 빈말이 아니었다. 덕분인지 몰라도 89타. 이번 여행 유일한 팔십 대라 혼자 클럽하우스에서 어깨 펴고 다녔다.
오후에는 시내로 들어와서 호안끼엠 호수 한 바퀴 돌고 문묘 구경했다. 관광은 그게 다였는데 그게 좋았다. 어디 라텍스 매장 이런 데 한 번을 안 끌려갔다. 넷째 날은 오전에 호텔 근처에서 에그커피라는 걸 마셨는데, 커피 위에 달걀 크림이 올라간 거다. 말도 안 되는 조합 같은데 묘하게 맛있다. 그러고 공항 샌딩 받고 끝.
돈 얘기 안 할 수 없지. 지상비가 1인 84만 원 정도였다, 넷 기준에 항공은 각자. 5성 호텔에 명문 세 군데 그린피, 전용 차량, 한국어 지원까지 들어간 값이면 나는 남는 장사였다고 본다. 아, 캐디팁은 현금으로 따로 챙겨 가라. 이건 어딜 가나 똑같네.
스카이레이크 아침. 물에 하늘이 그대로 비쳐서 어디까지가 그린인지 헷갈린다.
아쉬운 걸 굳이 꼽자면 더위, 새벽 기상, 그리고 킹스아일랜드에서 배 기다리는 십몇 분 정도. 그 정도다. 나머지는 도착해서 귀국할 때까지 차가 알아서 오고 티타임이 알아서 잡혀 있어서, 우리는 치고 먹고 자기만 했다.
내년 봄에 한 번 더 가자는 얘기가 벌써 나왔다. 3월쯤이면 덥지도 않을 거고. 그때는 네 일정부터 박아 놓고 시작하자. 이번처럼 빠지면 그때는 진짜 제명이다.
몸 건강히 지내라. 곧 보자.
– 하노이 다녀온 넷 중 제일 못 친 놈이
P.S. 우리 맡긴 데는 티그룹이라는 곳이다. 카카오톡에서 티그룹 검색하면 나온다더라. 인기 티타임은 7~10일 전에는 물어봐야 잡힌다니까, 갈 마음 있으면 미리 연락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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